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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배경

설립배경

한국전쟁의 상흔으로 가장 혼란스러웠던 1957년 마지막 피난지였던 부산에 미국인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님께서 가톨릭 선교사로 활동하게 되면서 의지할 곳 없어 거리를 헤매는 많은 전쟁고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병들고, 굶주리고 지친 그들을 위해 아버지가 됨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 결심하였고, 특히 1970년대의 사회 문제였던 영화숙, 재생원 아동들을 받아들이면서 소년의집을 설립하게 되었다.

설립목적

부모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요보호 아동에게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인지적, 정서적, 성장발달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올바르게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며, 나아가 건전한 민주시민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설립자소개

알로이시오 몬시뇰 사진

알로이시오 몬시뇰의 생애 (미국명 : 알로이시우스 슈윌쓰(Msgr.Aloysius Scwartz, 1930.9.18 ~ 1992.3.16))

1930년 9월18일 미국 워싱턴에서 출생한 알로이시오 몬시뇰은 미국 일리노이 글렌 엘렌 소재 메리놀회 신학교에서 학사과정(1948-1952)을 마치고, 1953년, 중국의 선교에서 유명하고 성인 같은 벨기에 사제 뱅상 레브신부 (1877-1940)의 영감으로, 방인주교 밑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제를 양성할 목표로 창설된 루뱅 소재 외방선교협조회(Societe Auxiliaire de Missions, SAM)에 입회하면서 루뱅 가톨릭 대학교에서 신학과정을 (1953-1957) 수료하였다.

어릴 때부터 선교사제가 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기를 원했던 알로이시오 신부는 미국 메리놀회를 떠나 벨기에로 갔고, 그곳에서 가난한 이의 동정녀께서 발현하신 바뇌성모성지를 찾았고, 5년 동안 15회에 걸쳐 성지를 방문한 알로이시오 신부는 사제서품 전 방문에서 가난한 이의 동정녀에게 자신의 사제직을 바쳤다. 이 일련의 사건을 성모님의 안배로 여긴 알로이시오 신부는 그의 수필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께 속한 나의 사제직’(Mon Sacerdoce Appartient a la Vierge des Pauvres, 바뇌성모성지 총사무국에 보관 중)에서 “나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에게 속한 사제입니다.” 라고 밝혔다. 그리고 바뇌성지가 속하는 리에지 교구의 커크호프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그리고 동일 주교의 명의로 미국 워싱턴 대교구 성 마틴 성당에서 1957년 6월 29일 사제품을 받았고, 선교지 한국에서 활동하기 위하여 부산교구에 입적하였다.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1961년에 워싱턴에서 민간원조기관인 한국자선회를 설립, 이 기관을 통하여 모금한 기금으로 한국에서 구호활동을 활발히 전개했고, 1962년부터 부산교구 송도본당의 주임신부로 재직하면서 1964년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하였고,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마리아수녀회의 사도직에 전념하기 위하여 1967년 5년 동안의 송도본당 주임직을 사임하였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생전에 한국, 필리핀, 멕시코의 6개 도시에 의료시설과 정규교육기관을 갖춘 6개소의 소년/소녀의집을 설립하여 수많은 불우 어린이와 청소년을 돌보았다.
1969년 7월에는 부산시의 노숙자 200명을 보호하는 마리아수녀회 구호소를, 1981년에는 서울특별시의 노숙자 2000명을 돌보는 마리아수녀회 ‘은평의 마을‘을 시작하였다. 1981년 5월 10일 그리스도수도회를 창설하였고, 이 수도회는 은평의 마을의 성인남자 노숙자에게 봉사하고 있다.

1975년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l976년 5월 미국 뉴욕 포담대학교에서 명예인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에는 필리핀의 라몬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고, 1984년과 1992년 2월, 2 회에 걸쳐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1990년 2월에는 교황청으로부터 고위성직자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1989년 10월 뜻밖에도 근육무력증으로 일명 ‘루게릭의 병’이라는 3년 시한의 불치병 진단을 받았다. 이 고통스런 투병기간 동안에도 알로이시오 몬시뇰은 휠체어에 의지하여 필리핀과 한국, 한국과 멕시코를 왕래하며 1991년 10월 멕시코 찰코시에 2000명의 불우 청소년을 돌보는 소년/소년의집의 1단계 사업을 완성 개원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5개월 후 1992년 3월16일 마닐라 산타 메사의 소녀의 집 사제관에서 운명하였다. 멕시코 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서 하루하루 꺼져가는 목소리로 녹음기에 구술, ‘조용히 다가오는 나의 죽음’ (원명: Killing Me Softly)의 원고를 임종9일 전에 탈고 하였다.

신부님의 유언에 따라 마리아수녀회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를 기리는 벨기에 바뇌의 성모님 발현 기념경당의 복제경당을 필리핀 실랑 소녀의집 구내에 건립, 그 제대 아래 신부님의 시신을 묻고, 무덤 위에는 몬시뇰께서 손수 작문하고, 임종 하루 전날에 문장과 철자를 확인한 비문이 새겨진 동판이 놓여있다. “여기 알로이시오 슈월쓰 신부가 묻히다. 모든 찬사와 영예와 영광과 감사를 가난한 이의 동정녀에게 바친다.” (영어원문: “Here lies Fr.Al Scwartz. All praise, honor, glory and thanksgiving to the Virgin of the Poor!")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삶과 그리스도를 열렬히 증거한 삶을 살았던 알로이시오 몬시뇰은 현재 시복시성 후보자로 올라 ‘하느님의 종’의 칭호를 받았다.

알로이시오 몬시뇰의 사업을 이어받은 마리아수녀회는 현재 한국, 필리핀, 멕시코, 과테말라 그리고 브라질의 10개 도시에 의료시설과 정규교육기관을 갖춘 10개의 소년의 집과 소녀의집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무료기숙과 교육시설을 갖춘 이곳에서 20,665명의 가난한 어린이와 청소년이 정규교육과 직업교육을 받고 있다. 마리아수녀회는 브라질리아의 소녀의집에 이어 산 파울에서 대규모 소년의집 사업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소년/소녀의집사업이외에 한국에서 두개의 무료병원, 노숙자를 위한 부산 구호소, 2개의 미혼모 보호시설을 부산과 서울에서 운영하고, 그리스도 수도회는 서울과 파주시에 2개의 부랑인 복지시설을 운영하여 2000명의 집 없는 성인남자에게 시설보호와 자활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필리핀 카비테 실랑과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분원을 두어 노숙자 보호를 위한 수도회의 사도직 사업을 계획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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